불교상식이해

거사(居士) 와 처사(處士)

증산도인 2012. 10. 3. 20:46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거사(居士) 와 처사(處士)
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(崇儒抑佛)정책으로 많은 사찰이 깊은 산중으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들어가  몇몇 스님들과 부녀자들에 의하여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 온  것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이 사실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그 시대에 남자들이 절에 간다는 것은 뜻이  있어 출가를 결심한 사람을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제외하고는,그야말로 할 일 없고 호구지책으로 절을 찾아간다거나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아니면 떠돌이 신세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고자 찾아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든 자들이 많았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그러니 그 시절 절에 가는 남자들을 자연스럽게 무능력한 ‘처사’라고 불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렸을 것이다. 그러나 요즈음은 불교가 대중화 되고 각종  법회와 수련회,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 템플스테이등 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부처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님 말씀을  배우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. 그중에 특히, 사회적으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기반을  닦고 생활에 여유를  갖는 40대 이후  중년 남자 신도들이  절을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 많이 찾는다고 한다. 이 과정에서 재가신도 특히 남자  신도들에게 부르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는 호칭에 문제가 있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출가 스님들은  같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스님을  ‘도반(道伴)’ 이라 하고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일반 재가불자들이 법회에 참석하여 부처님 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자들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은 ‘법우(法友)’라 하여 상호 존중으로 이름 뒤에 붙여 사용하면 별 문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가 되지 않는다. 그러나 신분이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면  스님들은 법명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 뒤에  ‘○○스님’  ‘큰스님’ 또는  직책에 따라 `주지스님` `총무스님`   등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하면 무난할 것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그러나 재가불자 특히 남자신도를 부르는 데는 통일되지 않고 있다.  여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자 신도님은 이름 뒤에 ‘보살님’으로 통칭하는 것이 관례이지만  남자신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도를 부를 때 일부 스님이나 여자보살님들이 유교문화의 잔존인   `처사`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라고 불러지고 있어 매우 잘못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「금강경」에  무엇 무엇 때문에 단지 이름이라 한다. 라는 말이 곳곳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나온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한 예로 제9분 일상무상분(一相無相分 )에 부처님의 제자 중 성문승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수행 단계별로 각기 이름이 있으니, 「색성향미촉법을 잘 다스려 밖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경계에 물들지 않고,  성인의 무리에 들어갔다(入流)하여 이름을  수다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원(須陀洹)이라 부르며, 일반중생들은 수많은 윤회를 거듭하지만 성인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의 두 번째  단계인 사다함의 경지에서는 한 번만 갔다 오므로(一往來) 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름을  사다함(斯陀含)이라 부르며, 성인의  세 번째 단계인 아나함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경지에서는  다시는 윤회를 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  자(不來)라 하여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 이름을  아나함(阿那含)이라 부르며,  최고의  경지인 아라한에서는 더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이상  배울 것이 없다하여(實無有法) 이름을 아라한(阿羅漢)이라  부른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다.」 라고 하였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이와 같이 모든 사물은 이름을  갖게  된다.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  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모가  이름을 지어준다. 그  이름에는 소망이 담겨있다. 이름처럼  소망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담겨있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이름처럼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름으로 인하여 잘되기도 하는가 하면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름으로 인하여 그 이름에 구속을 받는 경우도 있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「금강경」 곳곳에 다만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름은 단지  이름뿐으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할 수 있지만  이름 또한 중요한  가치가 있다고 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  생각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불교에서 교단을 구성하는 요소를 사부대중이라 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「금강경」 제32분 응화비진분(應化非眞分)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로수보리(長老須菩提)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비구(比丘) ․ 비구니(比丘尼) ․ 우바새(優婆塞) ․ 우바이(優婆夷)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일체세계 천인아수라들이 모두 기뻐하고 받들어 봉행하였다.」는 말이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나온다. 여기서 비구 ․  비구니 ․  우바새 ․ 우바이를 사부대중이라 하여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교단을 형성하고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자 들이다. 즉  남자스님을 비구(Bhiksu), 여자스님을 비구니(Bhiksuni)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남자신도를 우바새(Upasaka),  여자신도를 우바이(Upasika)라고 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출가 스님인 비구, 비구니는 말할 것도 없지만 재가 신도인  우바새, 우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바이는 불교를 믿고 착한 일을  행하며, 삼귀(三歸), 오계(五戒)를  지키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는 재가신도들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오늘날  출가스님을 비구, 비구니라 부르는 것은 귀에 익숙하게 들리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만 재가신도를 우바새, 우바이로 부르는 종단이나 사찰은 없는 것 같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그만큼 불교 종단이 출가 스님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또한 재가신도는 남자신도 보다는 보살이라 칭하는 여자신도 중심으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보살(菩薩)이란 범어 보리살타(Bodhisattva ; 菩提薩埵)의 준말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보리(Bodhi)는 진리, 깨달음[覺]이고, 살타(sattva)는 중생(衆生), 유정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(有情)이니 「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」 「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」 라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는 뜻으로, 보살은 깨달음의 마음을 내며 [上求菩提], 중생을 제도하는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것「下化衆生을」최상의 과제로 삼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와  같이 보살이란 부처보다 한  단계 낮은 경지에 있는 수행이  깊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원력이 높은 자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가 보살이 되어야 하며, 보살운동을 전개하여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야 마땅하다.이렇게 훌륭한 이름을 여자 신도를 부를 때만 사용한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거사(居士)란 말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부처님당시 재가남자신도로 덕이 높고 수행을 원만히 성취한 유마힐(維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摩詰)거사이름에서   유래한다. 거사란   사회생활을  하면서  삼귀(三歸) ․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오계(五戒)를 지키며 불교신행(信行)을  하는  재가 남자신도를 ‘거사’라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부른다.유마거사의 「유마경」에는 ‘부처는 한 가지 소리로 설법하지만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중생은 이를 여러 가지로 듣는다.’고 하는 유명한 가르침이 있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것만  보더라도 유마거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  믿음이 얼마나 견고하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고 수행과 덕이 높은가를 알 수 있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와 같이 남자 신도를 ‘거사’라 불러져야 하고, 또한 남자 신도역시 유마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거사와 같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선업을  쌓고  삼귀(三歸),  오계(五戒)를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지키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반면 처사(處士)란  유교사상을 이념으로  한 조선조 시대 현실에 적응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지 못하고 시골에 낙향하여 은둔과 도피, 세상을  부정과 원망으로 할 일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없이 세월을 보낸 무능한 남자들을 처사라 하였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렇게 좋지 못한 이름을 일부 스님이나 여자 신도님들이 재가불자 남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신도를 부를 때 ‘처사’ 라고 부르는 것은 불자로서 매우 유감이다. 이러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배경은 아마도 조선조  500년을 지내 오면서  여자신도들의 역할보다  남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자신도들의 역할이 전무하다시피 하지  않았나 생각이 되며 또한  남자신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도 스스로가 반성하여야 할 부분이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타 종교에서 신분계급을 나타내는 말 중 장로(長老)와 집사(執事)라는 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이 있다. 이는 본래 불교용어이다. 장로(Ayusmart ; 長老)는 범어 ‘아유솔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만'이라 하여 음역하면 존자(尊者), 구수(具壽)라고 번역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장로란 덕(德)이 높고 수행을 많이 하여 지혜와 도덕이  뛰어나고 나이가
                  많은 분을 일컫는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「금강경」 제2분 선현기청분(善現起請分)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「장로수보리존자(長老須菩提尊者)가 대중가운데에서  일어나  옷매무새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를 가다듬고 무릎을  꿇고 합장하고 공경히」 부처님께 법을  청하는  장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면이 나오며,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32분에서  장로수보리가 나온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미 부처님당시부터 장로라는 말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집사(執事)란  절집에서 온갖  살림을 맡아 꾸려가는 사람을  집사라 하였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다.즉 오늘날 원주소임 역할을 하는 스님을 집사라 할 것이다. 이와  같이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장로와, 집사는 불교집안에서 사용하는 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  종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로 빼앗기고, 천박하기 그지없는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 ‘처사’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.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일부 잘못된 소견을 갖고 계신분이 있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   “공부를 많이 한 남자신도를 거사라 하고,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그렇지 못한 일반 남자신도를 처사라 한다.”라는 그릇된 소견을 갖고 계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분이 있다.그런가 하면  불교가 암울한 조선시대에는 일부 스님네들이  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기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스스로를 `처사`라고 하였다고 한다.이야말로 아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무런 근거가 없고,그릇되게 이해하고 잘못되어 가는 것이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그러나 오늘날은 상황이 다르다. 불교가 대중화 생활화 되어가고  있는 상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황에서 상호존중과 남을 높여 줄 때만이 나의 존재 가치도 올라간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여자신도는  ‘보살’이라 대단히 높은 칭호를 사용하는데 왜  남자신도는 천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박하고 무능력의 상징인 ‘처사’라고 불려야만 하는가?
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오늘날  절을  찾는 남자 신도 분들 이야말로 가족을 봉양하고 사회생활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충실하면서 참 나를 찾고자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‘보살’임에 분명하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러한 보살들을 ‘거사’라 불러야 마땅함에도 유교문화의 잔재, 그것도  현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능력의 상징인 ‘처사’라 불러서야 되겠는가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불교는 현실 도피가 아니다. 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현실에  집착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하지 말고 삶을 초월하여 살아야 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남자신도들도 반성하여야 한다. 할 일 없이 그저  절에만 왔다가  기웃거리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리고 돌아가는 ‘처사’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적극적으로 사찰행사에 참여하고 사회생활하면서  삼귀(三歸), 오계(五戒)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를 지키고 수행을 더불어 실시하는 ‘거사’가 될 때 참된 대중불교,생활불교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가 되리라 생각한다.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일부 스님들이나, 여자 보살님들께서도 자각을 하셔서 남자신도를 당당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게 ‘거사’라 불려주기를 바랍니다.
 보 타 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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